On the Road


[여행지 칼럼] 벨기에 안트베르펜
네로와 파트라슈… 추억 간직한 ‘동화의 도시’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림>.

 

안트베르펜 중앙광장에 있는 손을 던지는 모습의 브라보상. 광장 주변으로 번성했던 중세의 길드하우스가 많이 남아 있다.

 

동화 ‘플랜더스의 개’ 배경인 안트베르펜은 한때 유럽 최고의 무역항이었다. 안트베르펜의 중앙광장에 있는 브라보상에서 이 도시 이름의 기원을 알 수 있다.

 

 

 

순한 눈망울을 가진 소년 네로와 그 옆을 지키는 커다란 개 파트라슈, 그 개가 끌던 우유가 가득 담긴 수레,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서 내림(Descent from the Cross)>, 네로의 친구 아로아. 지금은 시간대도, 방송사도 기억나지 않지만 포근하던 그림의 <플랜더스의 개>를 보기 위해 나는 늘 시간 맞춰 TV 앞에 앉았다. 그렇게 <플랜더스의 개> 속 마을의 풍경과 네로가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그림은 내게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았다.

 

영국 작가 위다 원작의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를 가슴에 안고 도착한 벨기에의 안트베르펜(Antwerpen)은 알다가도 모를 도시였다. 한때 유럽 최고의 무역항으로 1920년 제7회 하계올림픽 개최지였으며 다이아몬드 절삭 산업 1위이던 도시는 생각과 달리 매우 작고 평화로웠다. 내가 구시가만 둘러봐서 보지 못한 부분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벨기에나 네덜란드의 여느 도시와 다른 점은 찾을 수 없었다.

 

다른 도시들처럼 도시의 중심은 시청이 자리한 중앙광장. 이곳에 서 있는 분수는 이 도시 이름의 기원을 알려준다. 시청 뒤쪽에 흐르는 스헬데강 하구에 드루온 안티고누스라는 거인이 살고 있었다. 이 거인은 강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비싼 통행세를 받았고 통행세를 내지 않는 이의 손을 잘라버렸다. 거인에 대한 불만이 고조될 무렵 실비우스 브라보라는 로마 군인이 드루온 안티고누스를 죽이고 그 손을 잘라 강에 던졌다. 그 후 ‘손’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한트(hant)’와 ‘던지다’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베르펜(werpen)’이 합쳐져 한트베르펜이 되었고, 훗날 h가 사라지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리고 그 흔적은 시청 앞에 손목을 들고 던지는 포즈를 취하는 남자가 서 있는 브라보 분수에 남아 있다.

 

이 광장은 동화 속에서 네로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사건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생대회에 참가한 네로는 이 광장에서 발표된 대회 결과를 듣고 절망한다. 설상가상 네로는 방앗간 화재의 범인으로 몰려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이 광장 끝에 보이는 높은 첨탑을 가진 성모마리아대성당에서 네로는 간절히 원하던 <십자가에서 내림> 삼면화를 보고 그 앞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중앙광장 끝 부분에 위치한 성모마리아대성당에 들어가 루벤스의 그림 앞에 섰다. 그때 네로가 은화 한 닢이 없어서 보지 못한 그림을 나는 오래오래 그 앞에 서서 감상했다. 루벤스는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으로 안트베르펜 출신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풍요로운 성장기를 거쳤고 일생을 평온하고 여유롭게 살던 몇 안 되는 화가다.

 

아직도 기억나는 동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네로와 파트라슈를 보고 가슴 아파할 때 사생대회 심사위원이 나타나 네로의 그림은 훌륭하다며 네로를 찾는 장면이다. 일생을 평온하게 살며 최고의 화가로서 지위를 누렸던 루벤스의 그림 앞에 쓰러져 죽음을 맞이한 이 소년은 짧은 생을 살았으면서도 그 시간은 늘 고단했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 밑에서 우유배달을 하며, 유복한 가정의 친구 아버지로부터 멸시당하고 핍박받던 아이. 은화 한 닢이 없어 보고 싶던 그림을 몰래 바라보며 생의 마지막을 맞아야 했던 아이. 그리고 나중에서야 재능을 인정받은 아이.

 

루벤스 그림 앞에서 파트라슈를 껴안고 있던 네로를 떠올리고 있자니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네로는 그가 원하던 그림을 보았고 가장 절친한 친구와 함께했으니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웃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 사뿐사뿐 흐르는 멜로디를 갖고 있던 <플랜더스의 개> 주제가와 함께.    

 

 

황현희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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